알아보니 2011년에 졸업한 졸업생까지는 지원이 가능하다는걸 확인한 순간, '아!!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일이 잘 진행되게 하셔서 지원 마감일 전까지 논문 draft라도 쓸 수 있는 정도까지 진행시키신다는 말씀인가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기운을 내서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한 달 후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힘들게 되고 말았다. 힘든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다가 마감일을 앞둔 어느날, 논문상을 지원하라는 것이 내 생각은 분명히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꺼라는 생각으로 적잖은 부담감이 나에게 느껴졌고 결국은 작년에 보냈던 3편의 논문 중 하나를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보냈다. 그저 순종한다는 마음으로...(작년에 3편을 지원했었고, 가장 자신있었던 논문은 이미 출판이 되어 해당사항이 아니었고, 가장 자신이 없었던 논문은 작년에 수상했기에 딱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지원하고는 또다시 눈앞에 닥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건가의 문제로 하루하루를 정말 말그대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논문상 측에서 연락이 왔다. 1차 전형을 합격했으니 2차 발표를 위해 한국으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 가기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고, 성과가 없다보니 교수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리고 다녀와야 하는가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생각으로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또다시 한국에 도착한 날 오후에 바로 발표하고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바로 돌아오는 바쁜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작년에 다녀올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걸 경험하고 배우길 원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되게 해달라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기도하며 나아가는데 발표를 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듯한 느낌이었고 육체적으로도 너무나도 힘든 여행이었다. 발표를 할 때에도 연습했던 그대로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지만 무언가 작년보다는 관심도, 질문도 덜한 분위기였기에 그런 탓도 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미국에 돌아온 후,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를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하는데, 나도 모르게 또다시 나의 의와 나의 열심이 나를 끌어갔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그 의도는 좋았지만, 그 의도가 나의 열심이 된 나머지 나의 내면과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했었나보다. 먼저 주님과 가깝게 교제하며 성령 충만하여 나의 내면이 풍족해진 상태에서 주님의 일을 했어야 했는데,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겠다는 나의 욕심에 이끌려 모든 일에 임한 나머지 정작 나의 영적인 배터리가 다 소진되었다고나 할까??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이었지만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신실하신 주님은 이번에는 동상을 받는 영광을 주셨다. 더구나 올해부터 상금이 올라서 결국 상금으로만 따지면 작년과 같은 금액을 부상으로 받게 되었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 모습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실제적인 깨달음일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본다.
자신의 분깃을 요구하고, 결국은 그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로 인해 너무나도 기쁜나머지 그를 위해 잔치를 베푼 아버지에게 큰 아들은 서운함을 드러낸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29-30
하지만 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 우리는 큰 아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1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를 섬기며 분명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모든 명에 다 순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인해 그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리지 못했고 자신의 노력만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 됨을 증명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된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분명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아버지께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 우리의 영적인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진정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피곤함이나 지침 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삶이 된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충분히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오늘도 나는 모든 주권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았는지.
하나님과 동떨어져 나의 삶을 내가 짊어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아니면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나의 열심으로, 나의 노력으로만 이끌어 가려고 힘들어하지는 않았는지.
탕자의 형과같이 산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얼마나 감사한 말씀이신가?
하지만 그런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하고 당당히 누릴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