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요셉의 꿈

 흔히들 요셉을 꿈꾸는 청년이라고 부른다. 오늘 문득 요셉의 꿈과 요셉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했을까를 묵상하게 되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등장이 없다는 것이다. 구약의 다른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에는 하나님과 그들의 직/간접적인 대면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요셉의 이야기에는 그런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꿈을 해석하고, 요셉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인 대접을 받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는 등의 일들은 하나님의 동행과 축복의 증거이겠지만 '너를 내가 축복하겠고 크게 세우리라~~!!'나 '너는 이러이러한 일을 행할 지니라'와 같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약속이나 명령은 없었다는 것이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줄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한 후 말씀을 받아 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면 요셉의 이야기에서 특이한 것이 있다면 17세의 나이에 꾼 꿈일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을 가족들과 나눈 것이 결국은 형들의 시기심을 증폭시켰고 나중에 팔려가게 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니 어찌보면 이 꿈은 요셉에게 있어 불운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꿈이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었음을 알고 있고, 요셉 또한 그렇게 믿었으리라 생각된다. 요셉이 그 꿈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면 가족들과 나누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군다나 그렇게 싫어하는 형들에게 두 번째 꿈은 더더욱 나누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요셉의 이야기 전반에 걸쳐 꿈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우리는 요셉을 꿈꾸는 청년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꿈은 요셉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도 요셉은 그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족들에게 그 꿈의 내용을 전했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요셉이 그 꿈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였다면 거기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약속을 받은 후 곧 형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팔려가는 현실, 애굽에서 보디발의 눈에 들어 순탄한 길로 접어드나 했더니 그 아내로 인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현실, 간수장의 눈에 들어 형통해지면서 곧 관원장들을 만나 꿈을 해석해 줌으로 한 줄기 희망을 갖게 되지만 관원장이 감옥을 나가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잊게 되는 현실...요셉이 순차적으로 만난 이 현실들은 자신이 17세 나이에 꾼 하나님의 약속의 꿈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현실이다. 결국, 자신이 꾼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까지 요셉은 12년 남짓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과연 그 기간 동안 요셉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힘들어 했을까? 더구나 요셉의 이야기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위로나 약속이 없지 않았던가?! '요셉아, 내가 전에 보여준 꿈대로 너를 성공시킬테니 걱정하지마...조금만 더 참고 힘내렴...'이런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그런 요셉의 방황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요셉의 태도에서 늘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과 겸손함이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 41:16

 드디어 바로 앞에 선 순간, 요셉은 그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을 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의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자신을 종으로 팔았던 형들 앞에 다시 서서 자신을 밝혔을 때도 그들을 원망하기 보다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밝힘으로 그 모든 상황에 대해 겸손함의 태도를 보인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 5-8

 요셉에게 있어 모든 상황과 현실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따른 것이었고, 그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저 순종과 신실함을 일관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묵상을 하게 되었을 때는 또다시 어제의 실험의 실패로 인해 씁쓸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갔을 때였다. 과연 내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의 뜻은 다른 곳에 있는데 내가 미혹함에 이끌려 이곳에서 주님의 뜻이라 믿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며 주님께 기도할 때 주신 생각이 바로 요셉에 대한 생각이었다. 과연 요셉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과 실제 그가 지나갔던 현실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요셉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런 요셉의 태도를 생각하며 내려와 책상 앞에 앉아 요즈음 읽고 있는 Dr. James Maloney의 'The Dancing Hand of God'을 펼쳤을 때 만난 내용이 바로 요셉에 대한 내용이었다. What a confirmation!!

BUT WE WILL BE TRIED 
A pastor once chided me, "why do you stir people up and awaken hopes? Why do you get people to believe they will be healed, delivered, revived when you know it won't happen? Why do you set them up when they'll only be disappointed?"
   That bothered me...for about two seconds.
   I then wanted to become a David to this poor, disenchanted pastor. I realized that's how God operates. He awakens hopes and desires within us that in the natural seem utterly impossible to be fulfilled. He makes us a promise and then permits circumstances to come out and try us. He blesses us and then tries us with a promise. The word try means "to purify and refine." As in Psalm 105:19, "Until the time that his word came to pass, the word of the Lord tested him." This is speaking of Joseph sold into slavery at eighteen. He had to wait twelve long years for the fulfillment of the word. He was tried by the word-by the promise. The very promise itself tried him as a person. The word refined and purified Joseph from impurities-it wasn't simply his circumstances. That's important to note. It isn't so much God trying us as the word itself that tries the people to whom it is given.
   Lamentations 3:33 declares, "For He does not afflict willingly [from His heart], nor grieve the children of men." The apostles are called to ask a question: "Are you going to believe His words, or your circumstances?" One's circumstances simply say, "No, this won't work." But the promise of the Lord will try and test and refine, and then it will pay off. We have to separate these stages to avoid disappointment. As Luke 1:45 shows us, there will be a fulfillment of those things promised you by the Lord for those who continue to believe.
from 'The Dancing Hand of God' by Dr. James Maloney


 물론 아직도 혼란스럽고,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매번 기도할 때마다 academia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품게 하시는 것도 사실이기에 쉽게 포기하고 떠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생각 같아서는 믿음으로 취하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직 나의 믿음의 뿌리가 얕은가보다. 매번 이렇게 흔들리고 힘든걸 보면...지금이 어떠한 상황이든지, 지금 이 길이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더라도, 지금 힘을 보태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그 힘이 다할때 까지는 가보려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타이밍에 맞게 확실히 이끌어 주시겠지. 그 때까지 요셉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기억해야 겠다. 그 신실함과 꾸준함과 겸손함의 모습을...

2012년 4월 19일 목요일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황량한 광야에서의 삶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삶에는 굴곡이 있다. 그래도 버틸만한 날이 있는가 하면 너무 힘든 날이 있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즐거움이 살짝 올라올 때도 있다. 요 며칠은 너무 힘든 날들에 속한 시간이다. 그저 '답답함'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하기 힘든 그런 상태...

오늘 아침에도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힘들고 지쳐 주님께 기도하는데 시편 46편에 대한 감동을 주셨다.

시편 46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Psalm 46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present help in trouble.
Therefore we will not fear, though the earth give way and the mountains fall into the heart of the sea,
through its waters roar and foam and the mountains quake with their surging. Selah
There is a river whose streams make glad the city of God, the holy place where the Most High dwells.
God is within her, she will not fall; God will help her at break of day.
Nations are in uproar, kingdoms fall; he lifts his voice, the earth melts.
The LORD Almighty is with us; the God of Jacob is our fortress. Selah
Come and see the works of the LORD, the desolations he has brought on the earth.
He makes wars cease to the ends of the earth; he breaks the bow and shatters the spear, he burns the shields with fire.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
The LORD Almighty is with us; the God of Jacob is our fortress. Selah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라'는 구절도 힘이 되는 말씀이었지만 더 큰 위로가 된 것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라는 구절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또한 모든 것을 주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루시리니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없이 가만히 그 증인된 삶만 살면 된다는 말씀이니 어찌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늘 불안과 싸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불안함 속에서도 걱정하지 말고 버티고 있으라는 하나님의 말씀 또한 계속 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노력해서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그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가만히 순종함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 됨을 보이시는 역사를 기대해 본다.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Harvesters Arise! Conference 2012

지난 주말에는 교회에서 'Harvesters Arise! Conference' 라는 주제로 conference가 있었다. 역시 가장 기대되었던 것은 Heidi Baker가 speaker로 온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껏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어떤 conference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마치 극장에서 화제가 되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이라도 하는 듯,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 Heidi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큼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Chad Dedmon과 Julia Dedmon의 메세지도 좋았고, 그들 또한 주목받는 christian leader 들이지만 Heidi와 비교하면 사람들로 부터의 그 기대치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렇게 Heidi에게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두 번의 message를 통해 내가 느낀 것은 결국 '사랑'과 '낮아짐'이었다. 흔히들 사람들은 Heidi를 보면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모잠비크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랑은 정말 크다. 가난과 상처로 가득한 아이들을 돌보고, 또한 주님의 이름을 들어볼 아무런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목숨의 위협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 결과, 만 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음에서 다시 돌아오는 은혜를 경험한 그녀와 그녀의 ministry는 사랑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 갈 수 없는 여정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conference를 통해 그녀가 보여준 것은 그녀의 그 사랑 역시 주님의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성령님의 강한 임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소리치고 뒹구는 그런 radical한 meeting 이었지만, 그 뒤에 있었던 message는 심플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함을 더 깊이, 더 깊이, 더 깊이 경험하고 쌓아가는 것...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가는 것...그것이 바로 부흥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데 쓰임받는 비결인 것이다.


물론 수많은 메세지와 간증이 있었고, 저마다 아멘으로 받아들인 메세지에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이었다. 그저 막연히 이야기하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그 사랑...이글거리는 태양과 같이 뜨겁다고 하는, 주님의 눈을 통해 나의 심령에 전해지는 그 사랑...그 사랑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그 순간을 사모하는 마음을 받은 conference 였다.


자신의 나약함을 대중에게 그대로 드러낸 Heidi의 모습에서 낮아짐을 보았고, 결국 주님의 관계 외에는 아무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모잠비크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수백명의 아이들이 mama라 부르며 필요를 호소할 때, 그 부담감과 지침으로 도망치듯 참석한 예배에서 만나주신 주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그 때의 그 주님의 이글거리는 사랑의 눈빛으로 인해 자신의 소명을 재 확인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는 그녀의 간증을 들었을 때 나의 가슴 또한 떨려왔고 나도 그 주님을 경험하고 싶다는 열정이 타오름을 느꼈다. 


Harvesters Arise! 라는 주제의 conference 였지만 message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함과 그 친밀함을 통해 경험하는 뜨거운 사랑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주님께 쓰임받고, 은사를 통해 사람들을 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고 우리가 충분히 공급받을 때에야 그 모든 것이 가능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Chad Dedmon이 이야기 했듯이, 예수님과 데이트 하는 그 친밀함을 누릴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도해 본다.주님, Heidi가 본 그 불타는 주님의 사랑의 눈빛을 볼 수 있는 제가 되길 구합니다. 삶과 신앙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제 삶 자체가 주님과의 교제가 되고 데이트가 되는, 그리하여서 하루하루 ever-increasing glory를 경험하는 제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I had a vision ... Heidi Baker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고난을 통한 희망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감동이 있는 스토리이다. 이번에 사사기를 읽으며 만난 기드온의 메세지에서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사 6: 15-16
미디안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선택함을 받은 기드온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작은 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계속적인 확인이 필요했다. 현실과 믿음 사이에서의 계속적인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그의 요청대로 양털과 이슬을 통해 두 번의 confirm을 해 주신다. 아마도 상당한 불안과 혼란의 상황에 있었을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이 confirmation은 확신과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겨우 힘을 내서 전쟁에 나가려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또다른 도전을 주신다. 3만명이 넘는 군사를 일으킨 기드온에게 추리고 추려서 결국 3백명의 군사만 남기라고 하신 것이다. 3백명의 군사만을 남겨두고 수많은 메뚜기떼가 모여있는 것과 같은 적진을 바라보는 기드온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겠는가? 어쩌면 과연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걸까 하는 불안과 불신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또다른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신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삿 7:9-11
주님의 말씀을 따라 적진에 내려간 기드온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된다. 한 사람의 꿈과 그 친구의 해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확인한 기드온은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담대히 승전을 선언하고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삿 7:15
두려운 나머지 혼자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도 없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드온에게는 희망이라는 씨앗이 심어졌으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희망,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신다는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워 결국 기드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이 되게 한 것이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혼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절대적인 필요를 깨닫게 하길 원하셨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사는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이런 시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품길 원하는 희망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언제가 그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차원에서의 희망이었을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바라신 희망은 물리적인 해결책을 넘어선 차원의 희망일 것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 희망을 말하고 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 3-5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환난을 기뻐함으로 받으라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많은 말씀들을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이런 환난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또한 연단을 받는다고 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연단에 해당되는 단어는 'character'이다. 결국 고난을 통과하며 인내하다 보면 우리의 성품이 성숙하게 되고 이러한 성품은 소망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성품의 성숙 단계까지는 이해가 되어도 소망은 언뜻 와닿지 않았다. 만일 여기서의 소망이 단순히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에 해당하는 소망이라면 문제가 제기된다. 모든 신앙인들이 고난을 거쳐 인내와 연단의 단계를 통과해 소망의 단계에 이른다면 "짠~!!" 하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적어도 나의 경우는) 모든 단계를 거쳐 소망을 품게 되면 더 큰 실패를 겪게되곤 했다. 더구나 이런 논리적 전개는 궁극적으로 모든 크리스찬이 다 잘 살고 잘 되어야 한다는 소위 기복 신앙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5절을 보자. 바울은 이렇게 주어진 소망이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disappoint)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항상 이 소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음 또한 볼 수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 고난을 통해, 혼란의 시기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중 하나인 것이다.

작고 보잘것 없고 아무런 배경도 없는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을 무너뜨리고, 전장에 나아가 300명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적을 무너뜨린 것도,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는 이 소망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등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이 소망 위에 바로 설 수 있었음이 아니던가!!

며칠전 연이은 실패와 답답함으로 너무 힘들어 빈 강의실을 찾아 기도하고 있을 때 주신 말씀 또한 바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이 나에게는 소망이 되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신 31:7-8
모든 일이 잘 진행되어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리라는 희망이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는 평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그 소망을 통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다른 그 어떠한 것 보다도 이 희망적인 메세지를 품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앞으로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