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6일 화요일

포기할 것이냐?

돌아보면 참 핑계가 많은 삶이었다.
나는 늘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또한 그걸 핑계로 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온 것 같다.
거의 모든 시간을 실험실에서 일에 쫓기며 살아오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당연히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일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듯한 교수와 labmate들을 보면서 그들보다 상당히 적은 시간만을 일에 할애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모습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일터에서 힘들었던 그런 삶이었다. 그렇기에 일이 맘대로 안풀리는 것 또한 내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데서 이유를 찾으려 했었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속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주님께 더 나아가고, 더 경험하면서 그런 문제들로 부터 조금씩 자유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일에서는 많이 자유를 찾았지만 이제는 신앙적인 문제가 더해졌다.기도도 해야 하고 말씀도 읽어야 하는데 그런 일들을 하려면 나의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기에 결국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일하는 시간을 더 줄여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물론 와이프와 아들 녀석이 잠든 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늘 나는 너무 피곤하기에 도저히 집중해서 말씀을 보고 기도할 수 없다는 핑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다보면 자연스럽게 던져지는 질문이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Academia와 research를 고집하지 않고 회사가서 일하다보면 재정적인 문제도 풀릴 것이고 정해진 시간동안 일하면 되는 규칙적인 스케줄이 될 터이니 일에 묶이게 되는 것으로 부터도 자유롭게 될 터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여기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과연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지금 내가 믿고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이런 저런 고민에 시달리던 중 하루는 그냥 도서관에 가서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이런 저런 회사들도 살펴보고, 다른 연구 그룹들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아마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섞인 방황의 시간이었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런지 모르겠다. 막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너무나도 선명한 주님의 음성이 있었다.

포기할 것이냐?
너는 그렇게 이런저런 핑계로 나를 포기할 것이냐?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정말 나의 상황이 허락치 않는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것을 핑계로 주님과의 관계를 다른 일들 뒤로 미루어 놓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늘 고백하듯이 나의 생명되신 주님이라면 그분과의 시간을 그렇게 미루고 살지는 않았을텐데...

그날 이후 와이프와 승혁이가 잠든 시간부터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시작했다. 대부분 12시, 1시가 넘는 새벽 시간에 시작되기에 기도하다가 졸고, 말씀 보다가 졸기도 하지만 쉽게 멈출수가 없다. 너는 그렇게 나를 포기할 것이냐는 주님의 음성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나의 심령에서 들려오기에...물론 시간이 모든것을 보상할만큼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셨던 그 의도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가짐이라는 걸 깨닫는다. 상황에 굴복하고 스스로 핑계를 대며 정당화 하던 나약한 믿음...십자가가 우리의 내면에 선명하게 새겨질수록 우리의 삶의 비중은 주님께로 더 가까이 옮겨질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 주님과 동행하며 살고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다. 그저 우리의 하루 일상을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얼마나 그 분을 생각하며, 묻고, 의지하고 있는지.
나의 열심이-비록 주님께 영광돌리기 위한 일이라는 허울좋은 이유를 스스로 붙이더라도-어느덧 주님과는 상관없는 나만의 열심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주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나의 생각과 의지와 열심에 매달리게 될 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 뜻대로 일들이 풀려나가지 않을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께 원망섞인 푸념을 늘어놓으며 도망치게 된다. 도서관에서 빈둥대던 그날의 나도 그랬듯이.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것이 정말 큰 죄악이라고. 정말 큰 불순종이라고!!!


그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22:12-14

나의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봤을때 밀려오는 실망감으로 주님을 원망하고 나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태도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허무함만 줄 뿐이고, 하나님께는 죄악이 될 뿐인 것이다. 힘들고 마음이 어려울 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이글거리는 불타는 눈동자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 주님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힘들다고 나를 포기할 것이냐?'라고 물으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것만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은 대부분 세상적인 기준에서의 좋은 것이고 지금의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좋은 것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러한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께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사 30: 9-10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경우 기다리라 하신다.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계획하신 뜻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위해, 또 우리가 그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제대로 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기다리라 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이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축복이 바로 기다림을 통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 30:18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님의 그 분명한 음성을 기억한다면...
"나를 포기할 것이냐?"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 나를 두고 상황에 밀려 도망하는 것이냐?"
그 음성을 기억한다면 힘들어도 다시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그 뜻을 따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신실하신 주님을 믿기에...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믿기에...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분의 사랑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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