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7일 화요일

내 몸의 등불, 눈...

어제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제와 나눔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를 통해, 성경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구제에 대한 내용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고, 나눔의 삶과 우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음보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게 되는 경우, 우리는 당연히 구제와 나눔의 삶을 살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는 우리의 욕심을 자극할만한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우리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좋은 것들에 대한 욕심을 부추긴다. 이러한 욕심들은 나눔과 구제의 삶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요소라는 것도 사실이다. 문득, 얼마전 누가복음을 읽어나가며 나중에 시간 날 때 묵상해봐야 겠다고 적어둔 구절이 떠오른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니라
눅 11:3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온 몸이 빛의 거함으로 밝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온 몸을 밝히는 빛이 바로 우리의 눈이라 하셨다. 눈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생각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창이다. 눈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또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눈이 영적으로 밝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로인해 우리의 내면이 온전히 밝음 속에서 거하게 되는 반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둡다면, 우리는 당연히 어두움의 세력의 영향력에 들어갈 것이고 우리의 내면은 어두움의 속성에 의해 이끌려갈 것이다. 비판, 정죄, 두려움, 낙담, 낙심, 우울, 실망, 혈기, 욕심, 시기, 질투 등...이 모든 어두움의 속성을 지닌 요소들은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보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고, 또한 우리의 눈에 주님의 빛이 거하여 자연스럽게 영적인 어두움의 세력들을 걸러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도, 결국은 그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통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유혹에 넘어감으로 우리의 눈은 결국 빛으로부터 감기고, 어두움을 향해 떠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등불인 눈을 잘 지키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할 것이다.

오늘 신명기 말씀을 읽으며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7

죽음을 앞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은혜들과 지켜야 할 율례들을 전하던 중, 난데없이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갑자기 왜 아말렉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http://old.saemoonan.org/02_wship/print_preaching.php?index=1223&sort=weekend).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결국 진멸하라는 뜻이다. 아말렉은 애굽으로부터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으로 공격한 전투에 능한 족속이었다. 모세는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해가 지도록 지팡이를 들고 있어야 했다.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도, 경외함도 없었던 이 족속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전해 왔고, 더구나 지쳐서 뒤떨어진 약자들을 치는 전술을 택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겠다는 단호한 뜻을 모세에게 전하신다. 19절의 '잊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이 하나님의 확고하신 뜻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과 우리의 눈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사울에게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을 명하셨고 사울은 곧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아말렉을 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진멸한 것이 아니라 가치없고 하찮은 것들만 없앴을 뿐 아말렉의 왕 아각과 그의 좋은 가축들, 그리고 모든 값진 물건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겼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사울이 그렇게 살려둔 아각의 자손 하만은 훗날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다인들을 페르시아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따르지 않은 사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자신의 자손들에게도 위협의 요소가 되는 원인을 남겨놓게 되는 것이다.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눈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늘 주님의 음성을 듣길 간구한다. '주님 주님의 생각을 알길 원합니다. 제가 순종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라고 간청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의 눈을 통해 도전해 오는 세상의 욕심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눈은 우리 몸의 등불이라 하셨다. 우리의 내면을 주님의 빛으로 밝혀주는 등불이라 하셨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갈구하고 꿈꾸는 것보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우리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불을 꺼지지 않게 잘 관리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우리의 몸의 불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께로 온전히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눈이 우리 몸의 등불이라 하셨음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요즈음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의 눈을 통해 나의 생각과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나의 눈은 나의 육적인 삶 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에 있어서의 필터로서의 작용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2012년 3월 20일 화요일

'What if??' vs 'Why??'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지식적인 정보 습득을 위한 질문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하나님께 묻는 질문들도 있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 속성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서게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질문을 할 때, 혹은 질문을 받을 때 많이 쓰고, 듣는 말이 '잠깐만...' 이다.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그 대화를 멈추게 될 것이고, 어떤 행동을 하던 중이라면 그 행동을 멈춘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멈춘다는 것은 잠시 후 계속될 대화나 행동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국소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점이 바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될 수도 있다.

지난 주말 Dr. Myles Munroe의 'heavenly kingdom과 우리의 삶의 purpose'에 대한 설교 말씀을 들으며 'Why??'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기준으로 추구하는 것들은 'What?'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있지만 'Why?'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 특히 인생의 목적을 찾아감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에 개인적으로 참 공감을 많이 했다. 'Why?'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key가 되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왜 만드셨을까?',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은 나로하여금 어떠한 결정을 내리길 원하실까? 왜 내게 이 상황을 주셨을까?' 등등의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구할 때 저절로 만나게 되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생각해 보면서,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형태의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What if?'!!

'Why?'라는 질문은 어떠한 구체적인 answer 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나감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나가게 되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고쳐나가야 할 것들을 찾기도 하며, 주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맺어나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What if?'라는 질문은 단지 두려움과 망설임과 혼란만 더해준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이런 질문들이 시작되는 시작점을 찾아 내려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부정적인 작은 생각들이 그 씨앗임을 찾을 수 있고, 또한 많은 경우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아무런 확실한 근거 없는 추측에서 비롯된 것임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What if?'라는 질문은 우리의 삶을 불확실과 두려움과 혼란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favorite tool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기도하면서 받는 많은 message들은 행동에 대한 것이다. 내려놓음에 대해서 너무나도 많이 묵상을 해서인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많은 일들에 있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 영향을 끼쳐왔던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은 기도할수록,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동"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하게 하신다. 많이 고민하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끝은 행동이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과 낙담과 낙심이 팽배한 이 사회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감동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한 'action'을 취해 나감으로 나의 삶에 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Why?'라는 질문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반면, 'What if?'라는 질문은 'action'을 취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monitoring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삶은 어떠한 질문들로 이끌려 나아가고 있는지...

나의 삶이 하나님께로 묻는 'Why?'로 시작되어서 'Action!!'으로 끝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Anchor

며칠전 요즈음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을 위해 구하고 기도해야 할지를 물었을 때 주신 감동이 있었다.
다름 아닌 닻 (anchor)에 대한 말씀.

소위 forerunner라고 불리우는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지금은 마지막 때이고 특히 올해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의 일종의 shift가 일어난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보이고 있다. 물론 영적인 세계에 대한 나의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삶에 있어서나 주변의 다른 크리스찬들의 간증을 통해서나 무언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주님은 그것이 급진적인 변화이든지 아니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든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움직여 가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다. 즉, 지금은 움직임과 변화의 때라는 것...

그렇다면 왜 닻인가?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것이 신앙에 있어서의 breakthrough 이든 물리적인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고난을 이겨나가는 것이든, 주님 안에서 그것들을 뚫고 나가는 것을 원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닻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정말 무거운 큰 닻일수도 있고, 깨닫기만 하면 쉽게 잘라버릴 수 있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께 지금 우리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닻이 무엇인지 조명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주님께 간구하며 내 삶의 닻들을 조명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몇가지를 깨닫게 해주셨고 지금은 그걸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를 바로바로 보고 있다. 할렐루야!!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참 놀라게 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때가 낀다는 것이다. 막 기름칠을 한 바퀴처럼 잘 돌아간다 싶다가도, 잠시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녹이 슬고 뻑뻑해 지고 만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처음에는 힘 안들이고 쉽게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전거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냥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 것일꺼야.', '가다보면 지쳐서 힘들어지는 건 당연한거야.', '맞바람이 부나?'...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전거 바퀴와 체인에 먼지가 끼고 녹이 슬어 그런 것이라는 건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점점 지쳐가고 더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서야 혹시 무언가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나아가다 보면 오르막길도 있을 것이고, 바람도 불 것이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전거의 상태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우리가 잊지만 않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혹시 나를 붙잡고 있는 닻이 있는 것은 아닌가를 돌아보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우리의 사고 체계의 무뎌짐과 이성이라는 틀로 인해 놓칠수 있음을 기억하고 성령님께 간구해 나아가는 것이 닻들을 제거해 나가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우리의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날 때까지 고민에 빠져있을 필요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세세하게 점검하고 목록을 만들어 가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살 필요도 없다. 그저 물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하시고 또한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이제는 너무 늦기 전에 묻고 또 돌아봐야겠다.
지금 내 삶에 있어서의 닻은 무엇인지...

2012년 3월 8일 목요일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요한복음 말씀을 읽어나가면서 예수님께서 열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많이 만나게 된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어떤 단체를 판단하고자할 때, 자주 쓰게 되는 말이 '그 열매를 통해서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지금껏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 안에서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생각해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열매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나타내는 통로가 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1-2

아버지께서는 분명 우리의 열매를 보신다. 우리의 내면의 모든 문제들, 아니 우리 인생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 모든 일들을 관심있게 보시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시겠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가 회심과 회계의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어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를 그 포도나무에서 제거하실 수밖에 없다. 사랑과 공의라는 측면을 모두 가지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삶에서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 일이겠는가? 기뻐하시는 것 뿐만아니라 우리의 열매는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주님께 택함을 받아 세워지고 포도나무의 가지가 됨으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림과 동시에 주님의 기쁨이 되고, 그럼으로써 주님께 더 구하며 나아갈 수 있는 모습...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땅의 크리스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만히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내 삶에 열매가 있는가?
요즈음 들어서 특히 있던 열매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의 연속이라면,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빛이 살아있다면,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내 인생의 가지를 깨끗하게 하고 계신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이 정화의 과정이 지나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그 열매들 하나하나를 묵상하며 보내보려 한다.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시편 45편

James Maloney의 Glory to Glory conference 2012 후 기억하고 싶은 내용...


Leaving
Loving
Looking

그리고...

시편 45편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을 보기를 원하리로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Psalm 45, A wedding song.

My heart is stirred by a noble theme as I recite my verses for the king; my tong is the pen of a skillful writer.
You are the most excellent of men and your lips have been anointed with grace, since God has blessed you forever.
Gird your sword upon your side, O mighty one; clothe yourself with splendor and majesty.
In your majesty ride forth victoriously in behalf of truth, humility and righteousness;let the nations fall beneath your feet.
Let your sharp arrows pierce the hearts of the king's enemies; let the nations fall beneath your feet.
Your throne, O God, will last for ever and ever; a scepter of justice will be the scepter of your kingdom.
You love righteousness and hate wickedness; therefore God, your God, has set you above your companions by anointing you with the oil of joy.
All your robes are fragrant with myrrh and aloes and cassia; from palaces adorned with ivory the music of the strings makes you glad.
Daughters of kings are among your honored women; at your right hand is the royal bride in gold of Ophir.
Listen, O daughter, consider and give ear: Forget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
The king is enthralled by your beauty; honor him, for he is your lord.
The Daughter of Tyre will come with a gift, men of wealth will seek your favor.
All glorious is the princess within her chamber; her gown is interwoven with gold.
In embroidered garments she is led to the king; her virgin companions follow her and are brought to you.
They are led in with joy and gladness; they enter the palace of the king.
Your sons will take the place of your fathers; you will make them princes throughout the land.
I will perpetuate your memory through all generations; therefore the nations will praise you for ever and 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