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복이 있는 사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 5:3-12
성경 일독을 하면서 드디어 신약으로 들어왔다.
정말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모든 구절구절마다 붙들고 묵상하고 싶은 그 말씀들을 읽으면서 나의 영혼이 눈물을 흘리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팔복이라고 불리우는 산상수훈의 내용...
복을 받을것이라 말씀하시는 덕목들을 보면 모두 우리의 내면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심이 눈에 들어온다.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를 하는 등...우리의 어떠한 행동을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행동은 그런 내면의 밭을 통해 결실을 맺고 드러나는 열매가 아닐런지...

작년 말쯤부터 나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반복되는 숫자를 자꾸 보게 되는 것이다. 몇 시인가 궁금해서 시계를 보면 11:11, 5:55, 2:22 등 일련의 반복되는 숫자들을 보게 되었고. 그런걸 자꾸 의식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3:03, 1:21과 같이 앞 뒤로 동일한 숫자가 보이는 건 너무나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잠시 세탁소에 들려 세탁물을 픽업하는 와이프를 기다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한 가게 주소가 535여서 '555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하며 눈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바로 옆 가게의 555라는 큼지막한 주소가 눈에 들어오는가 하면 심지어 미국 생활 처음으로 받은 traffic ticket의 벌금도 $333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꾸 반복되는 이 숫자들을 보면서 무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계속 묻고 있는데 최근들어 주시는 마음은 반복되는 문제들과 상황들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의 breakthrough나 신앙에 있어서의 큰 upgrade, 또는 눈에 띄는 이적이나 기적과 같은 무언가 새롭고 주목할만한 어떤것을 기대했었는데 요즘 주시는 감동은 나의 삶에 있어 반복되는 문제들을 대하는 나의 내면의 상태에 대해 무언가 하시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개개인 마다 온갖 관심을 부어주시고 계시겠지만 나를 대하실때는 오로지 나와의 관계에만 집중하신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와 함께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을 겪어 나가시면서도 주님은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나 상황을 보시기 보다는 그 과정을 통과해 나아가는 나의 내면과 심령의 상태에 관심이 있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그 모든 문제나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배후에는 우리가 알지는 못하더라도 분명 우리를 향한 주님의 특별한 뜻이 있을 것이다. 힘들고 어렵긴 하겠지만 그 주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다림줄에 맞게 우리를 변화시켜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동안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모두 그 문제들에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것 때문에 힘들고, 또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거기에 나를 이해해줄줄 알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등의 상황 그 자체를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그런 모든 요소들이 바뀌어야 내 삶이 평탄해지고 행복이 찾아온다는 논리에 나의 반응을 맡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세를 유지하다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상황과 문제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오게 된다. 나는 특히 반복되는 것에 약하다. 내가 어찌 손쓸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찾아올 때, 또는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들을 때 나는 쉽게 지치고 피곤해한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고...그런 나에게 주님은 내 안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에게, 너 자신에게 관심이 있고 너에게 일하기를 원한다.나를 경험함으로 얼어붙은 너의 감정이 되살아나고, 반복되는 일들 통해서 너의 내면을 다스리고, 반복되는 문제들로 인한 짜증 속에서도 내게 부르짖으며 나를 찾으며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네 내면에 있는 그 문제들을 끄집어내서 함께 풀어가길 원한다.반복되는 문제들이 보이느냐?그 해답은 참는 것이고, 인내하는 것이고, 포용하는 것이다. 문제를 들어 외부를 비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너의 내면을 보길 원한다. 반복되는 문제들을 더이상 문제가 안되게 만드는 것은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너의 내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이제는 조금씩 나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고있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나는 일들이 계속 되지만 그저 인내하고 그것을 통과하며 나의 내면의 밭 이곳저곳에 깊숙히 밖혀있는 돌덩이들을 끄집어 내는 작업. 아직은 많이 서툴고 또 성급하다. 척박한 땅이 옥토로 변하기에는 제거해야 할 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은 내게 복을 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임을 되뇌이며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문제가 보일때, 나를 대적하는 상황이 다가올때,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가?
아니면 여전히 상황과 문제를 놓고 불평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서운해함으로 내 속의 화를 돋구고 있는가?

나의 심령은 어떠한가?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있는가? 온유함과 긍휼히 여김이 있는가? 의를 추구하고 있는가? 화평을 이루려 하는가? 마음을 깨끗이 하여 살고 있는가?

2012년도 벌써 첫달이 끝나가고 있다.
아플때마다 힘들때마다 나의 내면의 밭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자세히 돌아보며 주님께서 부어주실 그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밭으로 만들어가는 남은 한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라는 선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중 참으로 재미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후 순종함으로 나아간다고 한다면 요나는 시작부터 참으로 반항적이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하려다 큰 폭풍을 만난 요나와 뱃사람들의 대화는 정말 인상적이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욘 1: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하면서도 태연하게 주님의 명령을 거슬러 도망하는 요나와 그를 보며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라고 두려움으로 이야기 하는 뱃사람들...
나라면 이런 요나에게 크게 실망하고 다른 선지자를 찾았으련만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물고기까지 미리 예비하심으로 끝까지 붙드신다 (욘 1:17).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니느웨로 가긴 했지만 그 곳에서도 요나는 여전히 반항적이다. 사흘 동안 걸어야 다 돌 수 있는 큰 성읍이건만 단지 하루동안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요나...어찌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가 아닐수 없건만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통해서 사람들의 회개를 불러일으키시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심으로 그들을 향한 재앙을 피할 길을 내어주신다.

우리의 사랑은 작고 보잘것 없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크시다.
우리의 믿음은 작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심으로 인해 얼마든지 증폭될 수 있다.
때로는 반항심에 불타오르고 도망다니기도 하는 우리지만,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겨우겨우, 억지로 억지로라도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해서도 크나큰 역사를 이루어 내신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제한된 사고와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크나큰 계획 안에서는 사랑이고 선함이고 공의가 되는 일이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 4:11

크리스찬으로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실천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많은 시간, 나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나의 기준으로 정죄하며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반문하고 계시지 않겠는가?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자존심과 우리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거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진 기준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당연히 그들이 잘못했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버리곤 한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우리의 삶을 분함과 성냄으로 몰아가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욘 4:4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일 것이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사랑하기 힘든 사람까지 품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자신을 향해 침을 뱉고 돌을 던지던 사람들 속을 뚫고 그들의 죄를 대신 십자가에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내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 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 인해 내 안에 분노가 싹트고 원망과 화가 올라온다면 떠올려봐야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그 음성에 사랑으로 답할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 이루신 그 변화를 우리를 통해 이루실 수 있으실 것이다.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욥을 통해 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어찌 들으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메세지였다. 하지만 요즈음 너무나도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그리고 또한 많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는데 문득 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즈음 와이프와 함께 욥기를 읽어나가고 있는데 사실 나에게는 욥기는 참 헷갈리는 내용이다. 욥의 이야기나 친구들의 이야기나 어찌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아닌것 같기도 한...무언가 클리어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욥의 고난과 그 고난을 겪어나가는 욥의 태도도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super heroic faith와는 거리가 멀어보이기도 하기에 어쩔때는 도대체 왜 욥의 이야기가 성경에 소개되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메세지를 들으면서 욥기의 내용을 곱씹어 보았을때 무언가 클릭되는 느낌이 있었다. 욥기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구조를 통해 시작된다. 땅을 두루 돌아다니다 온 사탄에게 하나님은 물으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결국 욥의 그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보이신 이 믿음에 대한 사탄의 도전으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기억해볼 때 사탄의 이러한 도전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에 대한 도전이다. 하나님께서 faith를 보이신 욥이 고난에 굴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다 (blameless and upright)'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이 사탄의 공격으로 빼앗기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을 모르는 욥은 처음에는 굳건한 믿음의 모습을 보이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고 방황하게 된다. 끊임없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를 곱씹으며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욥이 흔들리고 방황한다는 점이 아니라 그 흔들림도, 방황도 믿음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흔들리고 방황하긴 했지만 너무 멀리 가버린 나머지 믿음의 울타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이런 믿음의 울타리 안에 있었기에,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을 때 욥은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통로를 열 수 있었고 그 결과 큰 복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본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겪었고, 그 고난을 super hero처럼 쉽게 이긴 것이 아니라 비틀거리고 허우적거리며 겨우겨우 믿음의 울타리 안에서 믿음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욥의 모습을 기쁘게 받으셨고 큰 복을 주셨다. 초반부에 등장했던 사탄은 더이상 등장하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영광을 욥을 통해 받으신 것이다!!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꿈꾼다. 하루에 기도를 몇시간씩 하고, 새벽기도는 기본이고, 금식도 수시로 하며, 전도의 불을 내뿜는 신앙적인 모습을 통해서 그렇고, 때로는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멘트를 사람들 앞에서 날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욥이 보인 그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답답해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원망섞인 외침을 하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주인, 아니 그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굳건한 믿음의 기초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될 수 있었다.
이제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면...기억해야겠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더라도, 남들이 나에게 무어라 할 지라도 내가 하나님께 믿음의 가지로 붙어 있다면 나는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1

사탄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수많은 눈에 보이는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이 정말 자신있게 내세운 '믿음의 실족 전략'을 우리가 깨뜨릴 때 더 큰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그저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을 점검함으로써 사탄에게 쓰라린 실패를 안겨주는 나의 승리하는 삶을, 그리고 나의 승리를 넘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그려본다.

2012년 1월 6일 금요일

In sync !

 2011년을 마무리 하는 시간, Blessed에서의 conference에 참석하여 찬양을 하는 동안 'in Sync'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in Sync with Holy Spirit'이라는 감동이었는데 이 생각으로부터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의 일련의 과정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In Sync >> Fire from Holy Spirit >> Mercy >> Fire from my inner man >> the Love of God >> Rise up and praise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 우리는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가? 물론 기도를 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중요한 질문은 과연 그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성령님과 동기화되는 것을 경험하는가?', 아니 '동기화 될 때까지 기다리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조차도 그 모든것을 성령님께 맡기고 순종함으로 따를 때 아마도 우리의 기도와 찬양은 훨씬 upgrade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과 동기화되는 것을 구하다보면 어느 순간 성령의 강한 임재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Physical하게 뜨거운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모든 자의적인 노력이 사라지고 그저 잠잠히 기다리는 가운데 새로운 기운이 그 시간을 lead하게 되는 경험이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 자신을 내어 맡길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mercy이다. 그동안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성령의 감동은 오히려 mercy가 먼저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love와 mercy를 놓고 무엇이 먼저냐고 딱잘라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모든 죄 된 속성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끝내신 그 사건을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 이다. 그것도 사랑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과 자비의 의미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완전하신 주 앞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분명 자비의 속성이다. 아무튼 주님의 mercy를 통해 나의 죄, 나의 상처, 나의 상황들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께서도 함께 짊어지고 가시는, 아니 우리보다 더 큰 열정과 진지함으로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identity를 다시금 회복하게 된다. 이 identity는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을 깨워 일으키게 되고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사랑 속에서 거하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찬양하며 주님을 경배하게 되는, 주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경험과 견해가 있기에 이 일련의 과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하기에는 솔직히 자신은 없다. 자신있게 영적인 어떤것들을 주장하기에는 나의 믿음의 나이가 아직 한참 어린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에 2012년을 살아가면서 적용해보고자 한다.

2011년이 나에게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고, 주님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정립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면, 2012년은 이제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일어나 빛을 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내 안의 속사람을 깨워 더 많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가고, 그 열매들을 나눔으로 내 삶의 영적 분위기 (spiritual atmosphere)에서 주님의 강력한 임재가 나타나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

2012년 1월 5일 목요일

2012!!

새해를 맞이한 후 처음 글을 올린다.
무언가 새로운 열매들이 많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으로 시작한 한 해!!

돌아보면 2011년은 참으로 은혜로왔던 한 해라는 생각이 든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 한 해였고,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고,
주님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을 재확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물론 일을 통한 테스트의 시간이 있긴 했지만 2011년을 마무리 하면서 그 또한 큰 은혜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진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또한 주셨으니 2012년은 그저 믿음으로 쭈~~욱 나아가는 것만 남아있는 듯...

Blessed International Fellowship에서의 Jesus Generation Conference 2011은 지금껏 맞이한 그 어떤 연말보다도 2011년의 연말을 뜻깊은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난 우리 교회가 좋고, 또한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Patricia King, James Maloney, A. L. Gill, Edwin Duran...
영적인 거장들이자 믿음의 선배들의 메세지를 통해 느끼는 것은 결국 'back to the basic'이 중요하다는 것. 주님 안에서의 가장 큰 부흥은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우리의 삶에서 제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었을 때가 아닐런지...

아무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때...
HOPE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며 설레임으로 시작하려 한다.
주님께서 새로 시작하실 그 역사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