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7일 화요일

내 몸의 등불, 눈...

어제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제와 나눔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를 통해, 성경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구제에 대한 내용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고, 나눔의 삶과 우리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음보다 자신의 욕심이 앞서게 되는 경우, 우리는 당연히 구제와 나눔의 삶을 살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는 우리의 욕심을 자극할만한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우리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좋은 것들에 대한 욕심을 부추긴다. 이러한 욕심들은 나눔과 구제의 삶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요소라는 것도 사실이다. 문득, 얼마전 누가복음을 읽어나가며 나중에 시간 날 때 묵상해봐야 겠다고 적어둔 구절이 떠오른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니라
눅 11:3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온 몸이 빛의 거함으로 밝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온 몸을 밝히는 빛이 바로 우리의 눈이라 하셨다. 눈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생각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창이다. 눈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또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눈이 영적으로 밝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로인해 우리의 내면이 온전히 밝음 속에서 거하게 되는 반면, 우리의 영적인 눈이 어둡다면, 우리는 당연히 어두움의 세력의 영향력에 들어갈 것이고 우리의 내면은 어두움의 속성에 의해 이끌려갈 것이다. 비판, 정죄, 두려움, 낙담, 낙심, 우울, 실망, 혈기, 욕심, 시기, 질투 등...이 모든 어두움의 속성을 지닌 요소들은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보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고, 또한 우리의 눈에 주님의 빛이 거하여 자연스럽게 영적인 어두움의 세력들을 걸러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도, 결국은 그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통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유혹에 넘어감으로 우리의 눈은 결국 빛으로부터 감기고, 어두움을 향해 떠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등불인 눈을 잘 지키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할 것이다.

오늘 신명기 말씀을 읽으며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7

죽음을 앞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은혜들과 지켜야 할 율례들을 전하던 중, 난데없이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갑자기 왜 아말렉인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http://old.saemoonan.org/02_wship/print_preaching.php?index=1223&sort=weekend). 기억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결국 진멸하라는 뜻이다. 아말렉은 애굽으로부터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으로 공격한 전투에 능한 족속이었다. 모세는 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해가 지도록 지팡이를 들고 있어야 했다.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도, 경외함도 없었던 이 족속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전해 왔고, 더구나 지쳐서 뒤떨어진 약자들을 치는 전술을 택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겠다는 단호한 뜻을 모세에게 전하신다. 19절의 '잊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이 하나님의 확고하신 뜻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내용과 우리의 눈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사울에게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을 명하셨고 사울은 곧 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아말렉을 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것이 다 없어질 때까지 진멸한 것이 아니라 가치없고 하찮은 것들만 없앴을 뿐 아말렉의 왕 아각과 그의 좋은 가축들, 그리고 모든 값진 물건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겼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사울이 그렇게 살려둔 아각의 자손 하만은 훗날 모르드개를 비롯한 모든 유다인들을 페르시아에서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따르지 않은 사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자신의 자손들에게도 위협의 요소가 되는 원인을 남겨놓게 되는 것이다.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눈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늘 주님의 음성을 듣길 간구한다. '주님 주님의 생각을 알길 원합니다. 제가 순종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라고 간청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의 눈을 통해 도전해 오는 세상의 욕심을 누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눈은 우리 몸의 등불이라 하셨다. 우리의 내면을 주님의 빛으로 밝혀주는 등불이라 하셨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갈구하고 꿈꾸는 것보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우리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봐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불을 꺼지지 않게 잘 관리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우리의 몸의 불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께로 온전히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눈이 우리 몸의 등불이라 하셨음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요즈음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의 눈을 통해 나의 생각과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나의 눈은 나의 육적인 삶 뿐만 아니라 영적인 삶에 있어서의 필터로서의 작용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2012년 3월 20일 화요일

'What if??' vs 'Why??'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지식적인 정보 습득을 위한 질문들도 있겠지만 우리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하나님께 묻는 질문들도 있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 속성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서게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질문을 할 때, 혹은 질문을 받을 때 많이 쓰고, 듣는 말이 '잠깐만...' 이다.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그 대화를 멈추게 될 것이고, 어떤 행동을 하던 중이라면 그 행동을 멈춘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멈춘다는 것은 잠시 후 계속될 대화나 행동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즉, 국소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점이 바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이러한 질문들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될 수도 있다.

지난 주말 Dr. Myles Munroe의 'heavenly kingdom과 우리의 삶의 purpose'에 대한 설교 말씀을 들으며 'Why??'라는 질문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기준으로 추구하는 것들은 'What?'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해줄 수 있지만 'Why?'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 특히 인생의 목적을 찾아감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에 개인적으로 참 공감을 많이 했다. 'Why?'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key가 되는 질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왜 만드셨을까?', '내가 지금 이곳에서 이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은 나로하여금 어떠한 결정을 내리길 원하실까? 왜 내게 이 상황을 주셨을까?' 등등의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구할 때 저절로 만나게 되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생각해 보면서,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형태의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What if?'!!

'Why?'라는 질문은 어떠한 구체적인 answer 를 구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답을 찾아나감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 나가게 되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고쳐나가야 할 것들을 찾기도 하며, 주님과의 더 깊은 관계를 맺어나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What if?'라는 질문은 단지 두려움과 망설임과 혼란만 더해준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이런 질문들이 시작되는 시작점을 찾아 내려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부정적인 작은 생각들이 그 씨앗임을 찾을 수 있고, 또한 많은 경우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아무런 확실한 근거 없는 추측에서 비롯된 것임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What if?'라는 질문은 우리의 삶을 불확실과 두려움과 혼란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favorite tool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기도하면서 받는 많은 message들은 행동에 대한 것이다. 내려놓음에 대해서 너무나도 많이 묵상을 해서인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많은 일들에 있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내 삶에 영향을 끼쳐왔던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은 기도할수록,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뜻에 따른 "행동"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하게 하신다. 많이 고민하고,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끝은 행동이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과 낙담과 낙심이 팽배한 이 사회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감동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한 'action'을 취해 나감으로 나의 삶에 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Why?'라는 질문은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반면, 'What if?'라는 질문은 'action'을 취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monitoring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삶은 어떠한 질문들로 이끌려 나아가고 있는지...

나의 삶이 하나님께로 묻는 'Why?'로 시작되어서 'Action!!'으로 끝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Anchor

며칠전 요즈음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을 위해 구하고 기도해야 할지를 물었을 때 주신 감동이 있었다.
다름 아닌 닻 (anchor)에 대한 말씀.

소위 forerunner라고 불리우는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지금은 마지막 때이고 특히 올해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의 일종의 shift가 일어난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서 많이 보이고 있다. 물론 영적인 세계에 대한 나의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삶에 있어서나 주변의 다른 크리스찬들의 간증을 통해서나 무언가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주님은 그것이 급진적인 변화이든지 아니면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가는 것이든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움직여 가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다. 즉, 지금은 움직임과 변화의 때라는 것...

그렇다면 왜 닻인가?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것이 신앙에 있어서의 breakthrough 이든 물리적인 우리의 삶에 있어서의 고난을 이겨나가는 것이든, 주님 안에서 그것들을 뚫고 나가는 것을 원하시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닻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정말 무거운 큰 닻일수도 있고, 깨닫기만 하면 쉽게 잘라버릴 수 있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께 지금 우리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닻이 무엇인지 조명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주님께 간구하며 내 삶의 닻들을 조명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몇가지를 깨닫게 해주셨고 지금은 그걸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를 바로바로 보고 있다. 할렐루야!!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참 놀라게 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때가 낀다는 것이다. 막 기름칠을 한 바퀴처럼 잘 돌아간다 싶다가도, 잠시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녹이 슬고 뻑뻑해 지고 만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처음에는 힘 안들이고 쉽게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조금씩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전거의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냥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오르막길을 가고 있는 것일꺼야.', '가다보면 지쳐서 힘들어지는 건 당연한거야.', '맞바람이 부나?'...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전거 바퀴와 체인에 먼지가 끼고 녹이 슬어 그런 것이라는 건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점점 지쳐가고 더이상 나아가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서야 혹시 무언가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나아가다 보면 오르막길도 있을 것이고, 바람도 불 것이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전거의 상태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우리가 잊지만 않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혹시 나를 붙잡고 있는 닻이 있는 것은 아닌가를 돌아보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우리의 사고 체계의 무뎌짐과 이성이라는 틀로 인해 놓칠수 있음을 기억하고 성령님께 간구해 나아가는 것이 닻들을 제거해 나가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우리의 머리를 굴려가며 생각날 때까지 고민에 빠져있을 필요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세세하게 점검하고 목록을 만들어 가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살 필요도 없다. 그저 물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하시고 또한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이제는 너무 늦기 전에 묻고 또 돌아봐야겠다.
지금 내 삶에 있어서의 닻은 무엇인지...

2012년 3월 8일 목요일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요한복음 말씀을 읽어나가면서 예수님께서 열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많이 만나게 된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어떤 단체를 판단하고자할 때, 자주 쓰게 되는 말이 '그 열매를 통해서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나도 지금껏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주님 안에서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생각해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열매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나타내는 통로가 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1-2

아버지께서는 분명 우리의 열매를 보신다. 우리의 내면의 모든 문제들, 아니 우리 인생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 모든 일들을 관심있게 보시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시겠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가 회심과 회계의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어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를 그 포도나무에서 제거하실 수밖에 없다. 사랑과 공의라는 측면을 모두 가지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의 삶에서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실 일이겠는가? 기뻐하시는 것 뿐만아니라 우리의 열매는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

주님께 택함을 받아 세워지고 포도나무의 가지가 됨으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열매를 맺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림과 동시에 주님의 기쁨이 되고, 그럼으로써 주님께 더 구하며 나아갈 수 있는 모습...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땅의 크리스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만히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내 삶에 열매가 있는가?
요즈음 들어서 특히 있던 열매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있는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의 연속이라면,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빛이 살아있다면, 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내 인생의 가지를 깨끗하게 하고 계신 것이라 믿기로 했다. 이 정화의 과정이 지나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그 열매들 하나하나를 묵상하며 보내보려 한다.

2012년 3월 5일 월요일

시편 45편

James Maloney의 Glory to Glory conference 2012 후 기억하고 싶은 내용...


Leaving
Loving
Looking

그리고...

시편 45편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을 보기를 원하리로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Psalm 45, A wedding song.

My heart is stirred by a noble theme as I recite my verses for the king; my tong is the pen of a skillful writer.
You are the most excellent of men and your lips have been anointed with grace, since God has blessed you forever.
Gird your sword upon your side, O mighty one; clothe yourself with splendor and majesty.
In your majesty ride forth victoriously in behalf of truth, humility and righteousness;let the nations fall beneath your feet.
Let your sharp arrows pierce the hearts of the king's enemies; let the nations fall beneath your feet.
Your throne, O God, will last for ever and ever; a scepter of justice will be the scepter of your kingdom.
You love righteousness and hate wickedness; therefore God, your God, has set you above your companions by anointing you with the oil of joy.
All your robes are fragrant with myrrh and aloes and cassia; from palaces adorned with ivory the music of the strings makes you glad.
Daughters of kings are among your honored women; at your right hand is the royal bride in gold of Ophir.
Listen, O daughter, consider and give ear: Forget your people and your father's house.
The king is enthralled by your beauty; honor him, for he is your lord.
The Daughter of Tyre will come with a gift, men of wealth will seek your favor.
All glorious is the princess within her chamber; her gown is interwoven with gold.
In embroidered garments she is led to the king; her virgin companions follow her and are brought to you.
They are led in with joy and gladness; they enter the palace of the king.
Your sons will take the place of your fathers; you will make them princes throughout the land.
I will perpetuate your memory through all generations; therefore the nations will praise you for ever and ever.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논문상 이야기: 두번째

첫번째 상을 받은 후, 일년이 지나고 이제는 신분이 박사과정 학생에서 포닥이 되어 있었다. 박사를 받은 랩에서 남아 박사후과정을 계속 하게 되면서 순조롭게 모든 일이 진행되어 결과도 빨리 얻을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연구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일들이 하나도 되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6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가능한 모든 조건을 다 다시 체크해 보아도 여전히 예전에 보였던 시그널의 1/3도 안되는 시그널만 나오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더이상 테스트해 볼 조건조차 남지 않아 아침이면 오늘은 무슨 새로운 조건을 시도해 보아야 할런지를 놓고 기도에 매달려야 하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던 어느날 기도하는데 난데없이 작년에 지원해서 받았던 논문상을 다시 지원하라는 생각을 주셨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놓고 기도하는데 갑작스럽게 논문상을 지원하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가 11월 중순으로 논문상 지원 마감일까지는 한달 조금 남짓한 시간이 남아 있는 시점이었다. 더구나 나는 이미 졸업해서 더이상 학생 신분도 아니었고...

알아보니 2011년에 졸업한 졸업생까지는 지원이 가능하다는걸 확인한 순간, '아!!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일이 잘 진행되게 하셔서 지원 마감일 전까지 논문 draft라도 쓸 수 있는 정도까지 진행시키신다는 말씀인가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기운을 내서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지만 한 달 후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 힘들게 되고 말았다. 힘든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다가 마감일을 앞둔 어느날, 논문상을 지원하라는 것이 내 생각은 분명히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음성이었을꺼라는 생각으로 적잖은 부담감이 나에게 느껴졌고 결국은 작년에 보냈던 3편의 논문 중 하나를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냥 보냈다. 그저 순종한다는 마음으로...(작년에 3편을 지원했었고, 가장 자신있었던 논문은 이미 출판이 되어 해당사항이 아니었고, 가장 자신이 없었던 논문은 작년에 수상했기에 딱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지원하고는 또다시 눈앞에 닥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건가의 문제로 하루하루를 정말 말그대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데 논문상 측에서 연락이 왔다. 1차 전형을 합격했으니 2차 발표를 위해 한국으로 오라는 것이 아닌가!!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한국으로 가기에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고, 성과가 없다보니 교수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리고 다녀와야 하는가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생각으로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또다시 한국에 도착한 날 오후에 바로 발표하고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바로 돌아오는 바쁜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작년에 다녀올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걸 경험하고 배우길 원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되게 해달라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기도하며 나아가는데 발표를 하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듯한 느낌이었고 육체적으로도 너무나도 힘든 여행이었다. 발표를 할 때에도 연습했던 그대로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지만 무언가 작년보다는 관심도, 질문도 덜한 분위기였기에 그런 탓도 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미국에 돌아온 후, 그 느낌은 무엇이었을까를 하나님께 물으며 기도하는데, 나도 모르게 또다시 나의 의와 나의 열심이 나를 끌어갔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그 의도는 좋았지만, 그 의도가 나의 열심이 된 나머지 나의 내면과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관심했었나보다. 먼저 주님과 가깝게 교제하며 성령 충만하여 나의 내면이 풍족해진 상태에서 주님의 일을 했어야 했는데,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겠다는 나의 욕심에 이끌려 모든 일에 임한 나머지 정작 나의 영적인 배터리가 다 소진되었다고나 할까??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이었지만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신실하신 주님은 이번에는 동상을 받는 영광을 주셨다. 더구나 올해부터 상금이 올라서 결국 상금으로만 따지면 작년과 같은 금액을 부상으로 받게 되었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내 모습에 있어서의 또 하나의 실제적인 깨달음일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본다.
자신의 분깃을 요구하고, 결국은 그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로 인해 너무나도 기쁜나머지 그를 위해 잔치를 베푼 아버지에게 큰 아들은 서운함을 드러낸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29-30

하지만 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을 통해 우리는 큰 아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 15:31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를 섬기며 분명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모든 명에 다 순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이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로 인해 그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충분히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리지 못했고 자신의 노력만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 됨을 증명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된 것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분명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도 우리는 아버지께 철저히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 우리의 영적인 에너지를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진정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피곤함이나 지침 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삶이 된다면, 우리가 주님 안에 충분히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오늘도 나는 모든 주권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았는지.
하나님과 동떨어져 나의 삶을 내가 짊어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아니면 주님의 일을 한다면서 나의 열심으로, 나의 노력으로만 이끌어 가려고 힘들어하지는 않았는지.
탕자의 형과같이 산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얼마나 감사한 말씀이신가?
하지만 그런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하고 당당히 누릴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린다.

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논문상 이야기: 첫번째

모전자에서 주최하는 논문대상이 있다.
고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매년 12월, 아직 출판되지 않는 논문에 한해 지원할 수 있고 1차 서류심사를 거쳐 2차 구두발표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가려내는 일종의 paper competition이다. 매년 1000편 내외의 지원 논문 가운데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까지 대략 100편 가량이 선정되어 상을 받게 된다.

유학을 나오기 전부터 이 상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연구 성과가 있고 시간이 맞으면 지원해보리라 마음먹고 실제로 2007년과 2009년 지원도 해 보았었다. 하지만 1차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던터라 이 상과는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졸업을 앞둔 2010년 말,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시 지원해보기로 했었다. 마침 논문은 작성했지만 출판되지 못한 (교수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관계로 내부 reject!!) 논문들도 있었고, 박사 졸업의 핵심 내용이 될 연구 결과로 작성한, 이제 막 투고하려고 하던 논문도 있었던 터라 3편을 모두 보냈다. 처음 single cell을 주제로 연구했던 내용을 담은 논문 (논문1)과 이제 막 투고하려고 하는, 내심 제일 자신있게 내세울만한 논문 (논문2)을 먼저 보냈고, Side project로 별 부담없이 진행했었던 연구 내용으로, 데이타상으로 미흡하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아이디어여서 써보았던, 하지만 교수님이 실험을 좀 더 해야할것 같다고 하여 미루고 있던 논문 (논문3)도 보낼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다음날 그냥 보내버렸다. 마침 와이프도 나는 하나님께 무언가 구하는데 있어서 믿음으로 강하게 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는 말도 들었던터라 처음으로 강력하게 기도하며 구했다...ㅋㅋㅋ
"하나님 아버지!! 상 주세요!! 대상, 금상, 은상 다 주세요!!"

'정말 이게 맞는건가? '하면서도 열심히 조르면서 기도한 다음날. 한 집사님으로부터 기도를 받는데 조용히 물으셨다.
"형제님, 요즘 하나님께 뭐 구하는게 있나봐요. 하나님이 형제님한테 한 번 물어보라고 하시네. '지금 네가 구하는 그것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너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 라고..."
순간 하나님께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으며 구했던 나의 마음 상태를 내가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런 나의 마음을 집어내시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했기에 그 질문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전해졌다.
"아버지 회개합니다. 온전히 저만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건 아닌가보다하는 생각으로 회개하고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몇 주 후 연락이 왔다.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했으니 발표를 하러 한국에 오라는 것이었는데, 가장 자신 있었던 '논문 2'도, 그래도 기대했던 '논문 1'도 아닌, '논문 3'이 버젓이 통과해서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주에 발표를 하러 가려면 당장 비행기표도 구해야 하고, 졸업 준비로 정신 없이 바쁜데 과연 그다지 데이타가 많지도 않고, 간단한 아이디어가 주축을 이루는 논문을 발표하러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바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부끄러운 나의 의도가 생각나 더욱 주저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많은 분들이 그래도 좋은 경험이니 다녀오는 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의도는 지금부터 바꾸면 되는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결국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미국 출발해서 한국에 저녁에 도착하고, 하루 자고 다음날 논문 발표 후 바로 미국행이라는, 한국에서의 체류 시간이 하루도 채 안되는 23시간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케줄로 발표를 하고 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와 하나님을 조금 더 경험하고 알게 되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다녀왔는데 무리한 일정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는지 한국에 가는 비행기가 텅텅 비어서 3자리를 혼자 독차지하고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기도하면서 준비하니, 평소와는 달리 (원래 앞에서 발표하면 많이 긴장하는 편...) 편안한 마음으로 발표할 수 있었고, 10분 발표, 15분 질문이라는 일정보다 훨씬 긴, 총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술술 대답하면서 오히려 즐기는 마음으로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면, 이렇게 긴장도 안하고 담대하게 할 수 있구나!!"
지금껏 발표했던 그 어떤 때 보다도 편안하게 발표했고, 어찌보면 허점 투성이인 데이타일 수도 있는데 장점을 충분히 강조할 수 있었고, 심사위원들도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후, 졸업을 향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최종적으로 은상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은상??!!"

나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 그 바로 전년도 우리 랩에서 Nature에 논문을 내면서 주목을 받았던 선배 형이, 그 논문으로 받았던 상이 바로 은상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상을 받았다는 그 사실보다 더 큰 기쁨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기쁨이었다. 마치 개인 과외라도 받은 것 처럼, 이 논문상을 지원하고, 상을 받는 과정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나의 계획과는 다른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면서 나의 신앙에 있어서도 큰 breakthrough가 일어난 계기가 되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7:33

주님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고 하신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하면 주실 것이라는 걸 강조한다. 하지만 주님은 또한 강조하신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된 후에 구하라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똑같은 기도라고 할 지라도, 똑같은 것을 구하고 있을지라도 그 의도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그리고 그렇게 구하는 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서 그 기도는 응답이 되는 것은 물론 나의 신앙의 breakthrough를 이루는 기도가 될 수도 있고, 그저 실망과 답답함과 원망만 안겨주는 기도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떳떳하게 구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내면을 늘 점검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다.

지금 나의 기도는 어떠한가?
나의 영광을 위한 기도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기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