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도 같은 패턴으로 기도해주면서 재우다가 슬슬 잠이 드는 것 같길래 다른 기도를 시작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찬양할때는 온전히 주님을 높여드리며 경배를 드리는게 상대적으로 쉽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혹은 홀로 기도할 때는 형식적으로 내뱉게 되는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 말고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감사드리는게 너무 없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래서 그냥 다른 것 생각치 않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기도 하고 있었는데 5분이 조금 지났을까 하는 시간부터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계속해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내 심령속에 평온한 기쁨이 밀려오는 것이, 세상이 주는 그런 기쁨과는 분명히 다른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그 기쁨과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왜 나의 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 기뻐했을까?
문득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학교에서의 기도 모임에서도 다른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다 세상적인 비전에 대한 것이었다. 일과 개인적인 삶 (가정)의 balance,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것 등등. 하지만 세상적인 기준에서의 삶의 목적이나 또는 하나님 안에서의 비전의 문제들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지 않을까? 내가 요즘 생각하는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함으로 높여드리는 것,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 이렇게 크게 두가지이다. 크리스찬으로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building up relationship with God)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두가지는 그 관계가 형성되면 당연한 나타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선 잘 알아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의 육체적 / 정신적 상태는 어떠한지 등등...이러한 것들을 알아야 지금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바람직한 관계는 어느 한 사람만 잘 알아서 공급해 주는 일방향성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양뱡향성의 관계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설사 많이 알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나 더 알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예수님은 어떠한 눈에 보이는 행위로 (심지어 그것이 주님을 부르며,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라 해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없음을 확실히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행함으로 인함 보다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우리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 하나님께 더 관심이 있음을 보일 때 우리를 더 기쁘게 받아주신다. 분주하게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움직이던 마르다를 뒤로하고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에게 그러하셨고,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던 여인에게 그러하셨다. 과연 그들의 그당시 마음 상태는 무엇이었을까? 오로지 지금 눈앞에 계신 예수님이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다른 어떠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가 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나아가다 보면 그 분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삶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삶인 동시에 그런 하나님을 더 알리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삶이어야 한다. 단지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두 팔 벌려 찬양할 때만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매순간 그분을 생각하며,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고민하는 것으로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삶이기에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기도를 드릴 때 나의 영이 그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흔히들 놓치게 되는 것이,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찬양과 경배는 못하겠네요. 나중에 제가 상태가 좋아지고 주님께서 크나큰 기도 응답과 축복을 주셨을 때 감사드리고, 찬양하고, 경배할께요.'라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말 그대로 우리의 주님이기에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때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이 생기고 영적인 힘으로 채워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여러가지 일들로 분주해서 주님을 생각할 틈이 없는가?
고민이 너무 많아서,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어서 그저 쉬고만 싶고 영적인 생활은 잠시 접어두고 싶은가?
육체적인 피로로 인해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자고싶고, 쉬고싶은 생각 뿐인가?
그렇다면 그 순간이 다른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다른 어떠한 해야 할 일들도 내려놓고 그저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고, 그분께 사랑을 고백할 시간일 것이다.
그런 고백의 시간을 통해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면 우리의 영이 기뻐 춤추고, 영적 돌파를 일으킬 수 있는 힘도 회복될 것이니 말이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높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