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느냐?"
무언가 뚜렷한 길을 제시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왠 뚱단지 같은 평강?'하는 생각으로 무시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또다시 감동이 느껴졌다.
"평강이 있느냐?"
내 생각이 아닌, 너무나 또렷한 생각에 내가 오히려 반문을 했다.
"주님, 지금 이렇게 많은 상황들이 앞에 있고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있는데 어찌 평강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또 들려오는 음성...
"평강이 있느냐?"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 평강이 있을 수 있겠냐구요?"
"그러면 언제 평강이 있느냐?"
"......음......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성령 충만할때 평강이 있겠지요."
이 대답 후 마지막으로 물으시는 또 한 마디.
"평강이 있느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우리는 늘 문제를 대면하고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결정을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의 문제들이 있고, 직장에서의 문제, 진로에 대한 문제, 가족과의 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신앙의 문제들 등등 인생은 풀어가야 할 문제들 투성이인 여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주님은 물으신다.
"평강이 있느냐?"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의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평강이 없을 이유가 없다.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 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쫓기는 마음이 들 일도 없다. 그저 그분을 믿고 바라보며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나의 의지, 내 열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하고 평강을 놓친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마치 내가 무언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기때문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문제들을 통해 사단이 날리는 '생각'이라는 화살의 공격을 받고, 끊임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생각의 실타래에 묶여 더 복잡한 문제 속으로 들어가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발버둥 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 평강이 있을 수 있겠냐구요?"
"그러면 언제 평강이 있느냐?"
"......음......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성령 충만할때 평강이 있겠지요."
이 대답 후 마지막으로 물으시는 또 한 마디.
"평강이 있느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우리는 늘 문제를 대면하고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결정을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의 문제들이 있고, 직장에서의 문제, 진로에 대한 문제, 가족과의 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신앙의 문제들 등등 인생은 풀어가야 할 문제들 투성이인 여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주님은 물으신다.
"평강이 있느냐?"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의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평강이 없을 이유가 없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 16:8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 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쫓기는 마음이 들 일도 없다. 그저 그분을 믿고 바라보며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나의 의지, 내 열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하고 평강을 놓친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마치 내가 무언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기때문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문제들을 통해 사단이 날리는 '생각'이라는 화살의 공격을 받고, 끊임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생각의 실타래에 묶여 더 복잡한 문제 속으로 들어가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발버둥 치게 된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눅 24:36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 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으셨을때 평강이 있기를 당부하신 것은 단순히 안부 인사 차원이었을까?
어쩌면 이 질문은 나의 영적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질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평강이 있는가? 혹시 나는 세상이 주는 문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나 혼자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우편에서 나를 도우시려 서 계시는 주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 평강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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