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소유와 직업에도 불세례를 받으십시오-장봉운 목사님

여러가지 일들로 참 쉽지 않은 요즘이다. 주님께 붙어있으려고 노력하면서 또한 그 분을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열심을 내긴 하는데 상황적으로는 더 힘들어지고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던 중 장봉운 목사님의 소유와 직업에서의 불세례에 대한 글을 접하면서 많은 위로와 또한 도전을 받았다. 정말 목사님의 글처럼 나 자신도 나의 구원은 오직 영과 육의 문제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소유와 직업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정의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이 다 물세례와 불세례를 받아 거듭날 때에 우리가 완전히 새로워짐을 기억해야겠다.


오늘 아침 갑자기 기차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었다. 여러가지 일들로 분주하고, 힘들고 또한 영적으로 싸우느라 지쳐서였을까? 한적한 시골길을 경쾌한 진동음과 함께 달리는 그런 기차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삶은 계란을 깨어먹는 재미도 빠질 수 없겠지...ㅋㅋㅋ 왜 기차 여행이 좋은 것이고 운치가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담한 기차역에서의 정차였다. 기차를 타고 가기만 하는 것은 지루하다. 처음에는 신나고 휴식이 되는 여행이겠지만 계속해서 달리기만 한다면 철커덩 거리는 진동음은 더이상 경쾌함이 아니라 소음이 될 것이고 엉덩이 밑으로 스프링이 그대로 느껴지는 의자가 주는 불편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갈 것이다. 그렇지만 기차 여행에는 정차라는 것이 있다. 가만히 멈춰 서 있을 때, 내리는 사람들과 새롭게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시간이 되면 잠시 내려서 열차 우동도 사먹는 그런 시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차는 또한 우리가 자동차 운전을 하고 가다가 마음만 먹으면 갓길에 세워놓고 쉴 수 있는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수동적인 이벤트이다. 기차가 서면 서는 것이고 출발하면 달리는 것이다. 목적지만 바라보며 빠른 시간에 도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정차는 치명적이다. 조급함이 더 올라올 것이고 급기야 짜증과 혈기가 올라올 수 있는 그런 시간일테니...하지만 정차라는 것이 기차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사람은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잠시 내려 자판대 앞에서 과자를 사달라며 엄마 손을 붙잡고 조르는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고,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한동안 바쁜 일상에 밀려 잊고 있던 부모님을 회상할 수도 있고, 서류 가방을 들고 바쁘게 뛰어가는 젊은 남자를 본다면 일에 대한 열정으로 힘든 것도 잊고 달려가던 자신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앞에 놓여있는 아직은 달리지 않은 길과 그 길의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주변의 멋진 경관을 보며 새로운 설레임과 기대감 또한 회복할 수 있다. 


어쩌면 이 기차 여행이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정차해서 멈춰서야 할 때도 있고, 위험한 산 위를 달릴 때는 속도를 늦춰야만 할 때도 있고,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차는 정확히 선로위를 달릴 것이고, 우리가 티켓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우리의 목적지에 분명히 도달할 수 있다. 티켓에 써있는 목적지를 보면 '아..내가 이곳에 가고 있는거지.'라며 자신의 목적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도 있다. 단지 우리는 기차의 여정에 자신을 맡기고, 긴장을 풀고 앉아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고, 회복또한 경험할 수 있다. 


힘들때면 한 번씩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나는 지금 기차를 타고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물과 불 속을 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빨리 지나갈 수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틀수도 없지만, 우리가 그대로 내어 맡기고 그 물과 불을 지나가다 보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티켓을 손에 쥐고 놓지 않기만 하면...어느 순간 기차의 뒷칸에 실어 놓았던 우리의 짐들은 다 타서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장만해 주신 새로운 짐들 (이전의 짐 가방보다 훨씬도 세련되고 고급스러운...)로 채워져 있음을, 그리고 기차는 더이상 덜커덩 거리며 거북이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지듯 초고속으로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믿음과 그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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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직업에도 불세례를 받으십시오
장봉운 목사님


구약성경 『출애굽기』는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구원과정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매우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반면에 구약성경은 서술적이고 역사적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철학적인 주제들에 관한 의미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신약시대를 사는 영적 과정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에서 찾아내야 할 영적 의미에 관한 요령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일 뿐입니다. 구원에 관한 증거로 세례가 있습니다(벧전 3:21). 구약시대에는 할례가 이스라엘인이 된 증거이며, 그것이 구원 받은 백성의 증표이기도 했습니다. 할례의 논쟁은 초대 교회에서 뜨거운 쟁점이었던 것은 구원의 증표로 계속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할례는 구약의 증표이며, 신약의 증표는 세례라는 사실을 교회가 공인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례가 물 뿐만 아니라 불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세례는 동시 또는 간격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의 세례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불세례는 성령 안에서 주의 백성이 되어 성령의 도구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치는 증거로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거듭남의 증거로서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례 가운데 우리가 이제까지 소홀히 여긴 부분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출애굽은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종살이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며,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통과하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인인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의인이 되어 이 땅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이 되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물을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신약성경은 세례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고전 10:1~2). 그런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몸만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 소유 모두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가축은 물론 각종 살림살이들을 다 가지고 탈출했고 그것들 모두를 가지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전 소유는 구름 아래 놓여있었으며, 물을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세례란 우리 몸뿐만 아니라 소유 전부에 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축이란 그 당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히브리인인 이스라엘은 농경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목축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가축은 생계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아갈 근거가 되는 집과 옷가지들도 모두 구름 아래 그리고 바다를 통과했습니다.

소유를 이집트에 두고 나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새로운 것을 장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닌 과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물을 통과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세례가 전혀 색다른 조건과 배경에 들어간 후에 받는 것이 아니라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과 화해하는 증거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 시기의 우리 몸은 여전히 죄인이며, 우리 소유 전체가 여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 몸과 소유 전체에 대한 세례는 우리 것 전부가 주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세례를 받을 때 우리 몸만이 구원되었고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유 전체에 대한 세례의 의식이 아직은 확립되지 못한 것입니다. 소유에 대한 세례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생계 수단인 가축의 세례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계 수단인 직업의 세례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 부분이 세례를 받아 주님의 것으로 인정되었을 때에 우리는 그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재물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며, 그 소유 전체에 대한 개인적인 권리와 주장을 포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례는 물과 불의 이원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물은 정결하게 하는 것이며, 불은 태워 소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이 두 가지 세례 과정을 통해서 전혀 다른 신분이 되었듯이 우리 소유와 직업 역시 이 두 가지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것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침묵적이고 내면적이라면 불세례는 역동적이고 외면적입니다. 물세례는 보이지 않지만 불세례는 가시적인 증상을 동반합니다. 이 두 가지를 통과함으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듯이 우리의 소유와 직업이 이 두 가지 과정을 통과할 때 진정으로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다수의 그리스도인 가운데 물세례는 받았지만 불세례는 받지 못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세례의 대표적인 증상이 방언이며, 뜨거운 불이 내리는 기름부음의 체험을 가지게 되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며, 세계관의 변화 등이 일어납니다. 누가 보아도 불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로 그 변화가 가시적이며, 급변적입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외형적 증거를 동반하기 때문에 눈으로 그 사실을 대부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둔감한 사람은 불세례를 미약하게 경험할 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불세례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소유와 직업에 대해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우리는 소명이라는 말로 대치해서 불러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물질에 대한 세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못한 것입니다. 소유와 직업이 물로 정결해지고 불로 태워져서 전혀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재산과 직업은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자에게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밭을 가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않듯이(신 25:4, 딤전 5:18, 고전 9:9) 일군에게 그 삯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 분깃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들꽃과 참새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증거하신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군으로서 일을 하게 될 때 더 많은 것들을 공급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소유와 직업이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 과정을 통과할 때 비로소 자신의 소유와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하는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몸이 불로 세례를 받게 되면 능력을 덧입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며, 직업이 세례를 받으면 그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재정지기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불세례를 받을 때 우리가 가졌던 소유가 타버리며, 직업이 새로워집니다. 그 실질적 현상이 바로 사업이 갑자기 기울어 재산의 손실이 오며, 직업을 잃게 되어 실직자가 되는 쓰라린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이런 위험스럽고 고통스런 과정을 밟고 있다면 이것이 자신의 소유와 직업에 대한 물과 불의 세례라고 인식해야지 실패나 징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과하여 몸과 재물과 직업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주요한 일군인 재정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몸을 비롯해서 재산 전체에 대한 세례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함같이 우리들도 완전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마 5: 48). 아직도 직업과 소유에 대한 불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전 존재가 세례를 받을 수 있기를 사모하십시오. 몸만 세례를 받고 재물이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이는 마치 자기 재산 전부를 이집트에 두고 몸만 빠져 나온 것과 같습니다.

재산에 대한 불세례를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이사야는 이 사실에 관해서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사 33:14)라고 언급했습니다. 여기서 시온의 죄인들과 경건치 못한 자들이란 아직 불로 세례를 받지 못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인식할 줄 모르는 미숙한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 시험이나 불세례를 받게 될 때 이렇게 믿음 없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사야는 참으로 용기를 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너의 돛대 줄이 풀렸었고 돛대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었고 돛을 달지 못하였었느니라.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사 33:21~24)

우리는 돛대 줄이 풀렸는지, 돛대 밑이 튼튼한지 제대로 점검하지도 않고 무작정 항해를 나선 어리석은 뱃사람처럼 그렇게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설치고 다니지는 않았습니까? 영의 일이 어떤 것인지,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영적 주체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임하고 작용하는지, 도무지 알지도 못하면서 육신이 끄는 대로 그렇게 주의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전부로 알았습니다. 주님은 “때가 되면”이라고 그 시기에 대해서 언급하시고 계십니다. 불 시험 또는 불세례를 통과하는 그 시기가 이르게 되면 우리가 비록 저는 자처럼 무능할지라도 재물을 취할 것입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보장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에 관해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사람들은 너희를 '주님의 제사장'이라고 부를 것이며,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 라고 일컬을 것이다. 열방의 재물이 너희 것이 되어 너희가 마음껏 쓸 것이고, 그들의 부귀영화가 바로 너의 것임을 너희가 자랑할 것이다.”(사 61:6) 이 말씀이 우리 세대를 위해서 간직해두신 말씀일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주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될 때가 바로 세상의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며, 마음껏 쓸 수 있게 되는 시기일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우리에게 당하게 하기 위해서 저는 여러분들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깨우고 자극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 강력한 재정지기들을 세우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역할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이런 재정지기는 소유와 직업이 불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 자격을 얻은 사람들 가운데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믿음이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시온의 죄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런 불을 통과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불과 함께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두려워할 것입니다. 직업을 잃고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서 파산하게 되기도 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불세례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이 더 이상 말로만 다루어지지 않고 실제로 그 역할을 성도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이 교회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중 사역이 회복되고 여러분들이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직임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며, 주어진 그 역할을 제대로 적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교회 구조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여러분은 ‘주님의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응답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주님의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열방의 재물이 우리 것이 되고 우리는 그 재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열방의 재물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 그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각 사람이 스스로 성령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임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제도적으로 만들어놓고 누구나 적당히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제사장이 되는 길을 막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여러분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몽학선생과 같고 율법과 같은 제도는 이제 성숙해진 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장애물과 같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부귀영화가 우리의 것임을 자랑하게 되는 시대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을 품고 영의 일을 사모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영성훈련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재물의 축복을 얻는 확실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댓글 1개:

  1. ㅜㅜ 영적으로 민감한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배때마다 나타나고 있고 주님이 하신다고 고백하지만 때론 모임의 일원중 이러한 경험을 했다 하면 - 미혹 잘못된것으로 간주 해버릴때가 있다 꿈의이야기후 본인이 가는게 맞다고 장담한다 감동이와 섬기면 잘못 받은거라 한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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