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4일 수요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자아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죄인임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주님과의 참된 교제도, 기쁨도, 감사함도 누릴 수가 없다.

나의 능력은 모자라지만, 나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나의 지혜와 사랑은 감당치 못하는 것들이 많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계시기에, 그 분이 내 옆에 계시기에, 그 분을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겸손의 자신감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힘을 내야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2011년 9월 9일 금요일

평강이 있느냐?

최근 여러가지 혼란스러운 일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가운데 계속해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있다. 아직 뚜렷한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고 가야할 길이 활짝 열린 것도 아니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느껴지는 조용한 음성...

"평강이 있느냐?"

무언가 뚜렷한 길을 제시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왠 뚱단지 같은 평강?'하는 생각으로 무시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또다시 감동이 느껴졌다.

"평강이 있느냐?"

내 생각이 아닌, 너무나 또렷한 생각에 내가 오히려 반문을 했다.

"주님, 지금 이렇게 많은 상황들이 앞에 있고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있는데 어찌 평강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또 들려오는 음성...

"평강이 있느냐?"

"그러니까 어떻게 지금 평강이 있을 수 있겠냐구요?"

"그러면 언제 평강이 있느냐?"

"......음......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성령 충만할때 평강이 있겠지요."

이 대답 후 마지막으로 물으시는 또 한 마디.

"평강이 있느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우리는 늘 문제를 대면하고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결정을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의 문제들이 있고, 직장에서의 문제, 진로에 대한 문제, 가족과의 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신앙의 문제들 등등 인생은 풀어가야 할 문제들 투성이인 여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주님은 물으신다.

"평강이 있느냐?"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처럼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의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라 한다면 우리에게 평강이 없을 이유가 없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 16:8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해 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쫓기는 마음이 들 일도 없다. 그저 그분을 믿고 바라보며 열어주시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나의 의지, 내 열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하고 평강을 놓친다. 지금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마치 내가 무언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기때문에 직면하게 된 것이라는 근거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문제들을 통해 사단이 날리는 '생각'이라는 화살의 공격을 받고, 끊임없이 잠식해 들어가는 생각의 실타래에 묶여 더 복잡한 문제 속으로 들어가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발버둥 치게 된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눅 24:36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 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찾으셨을때 평강이 있기를 당부하신 것은 단순히 안부 인사 차원이었을까?

어쩌면 이 질문은 나의 영적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질문이 아닌가 싶다.

"나에게 평강이 있는가? 혹시 나는 세상이 주는 문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나 혼자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우편에서 나를 도우시려 서 계시는 주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 평강이 있는가?"

2011년 9월 2일 금요일

리더는 주님께 가장 많이 공급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9월 2일 Heath group prayer meeting에서 sharing 한 내용...

어쩌면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세상적인 리더가 될 것을 강요받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리더들로부터 새로운 비전을 기대하고, 카리스마를 기대하고, 올바른 선택을 기대하고,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크리스찬 리더는 어떨까? 구약의 리더들은 메신저들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때로는 회개를 요구하고, 때로는 특정한 장소로 이끌어가고, 또 때로는 예배드리는 방법을 제시하는...말 그대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가장 많이 공급받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교제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능력으로 구체적인 계획과 해결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소위 공급해주어야 하는 현대 시대의 세상적 리더들과는 확실히 구분된 모습이었다.

우리는 크리스찬 리더를 꿈꾸고 있는가? 혹은 리더로서 섬겨야 하는 자리에 있는가? 그렇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과 가장 가까이 교제하며 그 분께 무조건적인 공급을 받는 것을 먼저 구해야 할 것이다.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물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결정하고 인도해 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누가 리더인가?
구약 시대의 리더는 확실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선택해서 세우셨기 때문에 리더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원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더이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성소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믿음으로 부르짖고, 구하면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우리는 더이상 우리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리더가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직책을 가짐으로써 세워지는 리더가 아니라 이 세상의 참된 리더인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가장 많이 공급받는 자가 되어야 하며 늘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날마다 우리의 육적인 것을 죽이며, 우리 자신의 생각과 능력으로 이끌어 갈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집중하고 순종하며 예수님께서 리더로 세워 쓰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늘 우리에게 물어야 한다.
자신이 이 땅에서 리더의 삶을 살아야 함을 인지하고 있는가? 그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주님과 또한 인도해가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믿으며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주님께서 간섭하심을 기대하고, 믿으며 날마다 새롭게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삶에서 지치지 않도록 늘 주님께 공급받아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9/2/2011
Young Shik: Leader is the one who should be provided the most

Leaders in non-christian world are accepted as ones who provide insights to the future, resources to solve problems, connections for the integrity of the group etc.
But christian leaders should be ones to get provided the most from God.

Christian leaders before Christ were messengers (Abraham, Moses, and Samuel etc.). They carried over God’s thought and plan to the rest of the people. Thus, they were the ones who interacted with God the most, got provided from God the most.

Then Moses summoned Joshua and said to him in the presence of all Israel, “Be strong and courageous, for you must go with this people into the land that the LORD swore to their forefathers to give them, and you must divide it among them as their inheritance.
The LORD himself goes before you and will be with you; he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Do not be afraid; do not be discouraged.”
Deuteromony 31:7-8
How about the era of the New Testament?
Christian leaders are still messengers. However they are more than just messengers. Because it is Jesus, who is inside those leaders, that commands, shows the way to go, and enlightens people.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Gal 2:20
The true leader in this world is Jesus. And thus, if we are christians, we are all supposed to be leaders not because of our ability, knowledge, and experience but because of His presence in us. We all should ask Jesus provide us more, shine light on the path that we should follow. We should check ourselves if we are not blocking His providing and guidance and should let him be the LORD of our life.

Do you think you are currently a leader or a potential leader?
Are you focusing on being filled with the love of Jesus, his wisdom, his passion, and his humbleness or are you focusing on building a concrete plan, finding solutions, and reading the current trends?
Are you conscious of the fact that you are the leader through Jesus and the responsibility as a leader?
Are you seeking His guidance all the time?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tell you great and unsearchable things you do not know.
Jeremiah 33:3

2011년 8월 29일 월요일

은혜받을 준비, 축복받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요즈음 모든 것의 주권자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주님뿐임을 차근차근 깨달아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생각나는 것이 과연 과거의 나는 어떠했는가 하는 사실...

지지난 주일 (8/21/2011) 승혁이가 세례를 받았다.
내가 직접 세례를 받을때보다 더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었던 것은 과연 나의 아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3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조금은 내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갔음으로 인한 것일까?
아마도 둘 다이지 않을까 싶다. 할렐루야!

내가 세례를 받을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례식 후 축하를 받을때 함께 불러주셨던 노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너무나도 흔하게 불리우는 노래이기에 그게 뭐 특별한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노래가 특별한 것은 또다시 3년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의 경험과 오버랩되어 설명된다.

2004년 박사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나오고 정신없이 수업을 듣고 있을 당시 Caltech에는 매주 진행되는 bible study가 있었다. 밥먹을 시간도 부족해서 책을 보며 밥 한끼를 후다닥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기에, 더구나 그 당시의 나에게는 하나님이나 기독교는 전혀 상관없는 토픽이었고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던 시절이기에 나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모임이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 모임에서 밥만 먹고 가도 된다고, 그냥 와서 밥만 먹고 가라는 말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었고, 급기야 금요일 저녁을 해결하고자 하는 속셈으로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바로 그 첫 모임에서 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상당히 낯뜨겁게 만나게 된다. 저녁을 먹고, 소위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빨리 가서 숙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떠나려는 나를 불러세워놓고 bible study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양팔을 내게 뻗고 그 노래를 내게 불러 주었던 것. 지금 생각하면 축복이자 은혜이겠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모두들 앉아있는 상황에서 나만 홀로 문 앞에 우뚝 서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두 팔을 내 뻗고 불러주는 그 노래가 끝나기까지의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나 길게 느껴졌었는지...그 사건(?) 이후 bible study 모임은 더이상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고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기까지 내 머릿속에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 노래를 내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크리스찬으로서 살기로 공언하는 자리인 세례식에서 다시 듣게 되는 것. 하지만 그 때의 그 노래는 더이상 나를 뻘쭘하게 하는 노래가 아닌, 축복의 노래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이 개인적인 사건이 은혜를 받는 것, 축복을 받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일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내가 처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었을 때의 나의 삶은 온전히 내가 주인인 삶이었다. 문제들이 있으면 내가 노력해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었고, 내 인생의 계획을 세울때에도 온전히 내가 가진 능력과 내가 가진 리소스들을 기반으로 세우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딱히 생각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누군가에게 축복을 받고,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부자연 스러웠던 것. 하지만 이것을 조금더 깊이 들여다보면 바로 나 자신의 교만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던 것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대체 뭐길래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 축복을 해준단 말인가?!!" 직접 내뱉진 않았지만, 아니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 내 잠재의식 속에는 이런 생각이 열심히 반응하고 있었을 것이다. 죄인으로 이땅에 태어나 그나마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와 은사로 큰 문제 없이 공부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걸 모르고 단지 내가 열심히 했기에 당연히 내가 얻은 상황이라는 생각, 혹시 무엇이라도 계획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운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생각으로 내 삶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이런 교만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고 누리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나의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크리스찬으로서의 삶일진데 아직도 내가 열심히 해서 무언가 이루려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보게 된다. 내가 내 인생의 앞에 서있는 이상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어떤 은혜도, 축복도 진실되게 누릴수 없음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문득 문득 나의 내면에 교만이라는 영적인 담이 높아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여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늘 구한다. 하지만 구함과 동시에 우리는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두 팔을 뻗고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들 앞에서 어색함과 당혹스러움으로 서 있었던 나의 모습처럼, 우리도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그런 모습으로 서있는 것은 아닌지.
축복과 은혜를 구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경험과, 이성과, 생각으로 무장한 채 우리 안의 교만의 담을 낮추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주님앞에 나아가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할 것이다.
"은혜받을 준비, 축복받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나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온전히 주님께 맡길 준비가 되어있는가?"

2011년 3월 17일 목요일

Diagnostics for All

http://www.dfa.org/index.html

Defense를 끝내고 industry job을 알아보면서 알게된 기업.
non-profit enterprise로서 내가 속한 lab-on-a-chip field의 기술을 이용하면서 제3세계의 의료사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개인적으로 처음 이 기술을 접한 것이 1년 전쯤 이었던가?
처음 봤을때는 저런걸 뭐에 쓰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어쩌면 간단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귀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카데미아에 있을지 아니면 인더스트리로 갈 지 아직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내 인생의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일을 위해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2011년 3월 9일 수요일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느낌을 바꾼다

2010년 새해가 막 지난 무렵 런던 서부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29살의 남성이 층계참에서 떨어져 6인치 못 위로 떨어졌다. 못은 그의 부츠를 뚫고 거의 발등까지 파고들었다. 상상도 못할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동료들은 즉각 구급차에 태웠고, 구급차는 서둘러 그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못이 조금만 움직여도 그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응급실 의사들은 재빨리 수술 전에 졸음이나 의식을 잃게 만드는 데 사용하는 미다졸람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곧이어 의사들이 모르핀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진통제로 주로 말기 암 환자에게 처방하는 펜타닐을 추가 투여한 것을 보면 그 청년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환자를 진정시키고 통증을 제어하며 의사들은 그의 부츠를 조심스럽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작업 부츠를 다 벗겨냈을 때 그들은 놀라운 일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의 발가락 사이로 못이 깔끔하게 지나갔던 것이다. 상처라곤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299p)

해리 벡위드 지음, 이민주 옮김 '언씽킹 Unthinking - 행동심리학이 파헤친 인간 내면에 관한 매혹적 통찰' 중에서 (토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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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느낌을 바꾼다."

우리가 느끼고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공사장에서 6인치 못 위로 떨어진 한 영국 청년.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발에 못이 찔렸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모르핀보다 100배나 강력한 약물까지 필요했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의 느낌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못은 발가락 사이로 아무 상처도 남기지 않고 지나갔지요.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몸이 종종 우리의 뇌를 속이는 것처럼 우리의 뇌도 우리의 몸을 속인다는 것이지요.

못에 찔린줄 알았던 한 영국인 청년의 흥미로운 사례를 보며 우리가 최선이라고 믿고 내렸던 선택이나 결정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3/8/2011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

2011년 1월 21일 금요일

졸업

드디어 졸업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일단 Jim은 3월 첫째, 둘째 금요일이 좋다고 했으니 다른 교수님들이 된다고 하면 그 시간이 될터인데 아직 졸업 후에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지 대책이 없는게 불안하네.
그러게 좀 부지런히 일찍일찍 알아 볼 것을...쩝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여기저기 찔러봐야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고 싶어하는 것들과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의 갈등은 계속 되고 있다. 끊고, 내려놓는 것, 미련을 버리는 것에 참 약한 나의 모습...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을 계속 받고 있는데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할 듯 하다.

당분간은 바빠질듯...